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클랜드 전쟁 (문단 편집) == 기타 == * 전후 양국은 [[단교]] 상태였다가 1990년 2월 5일 재수교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각자 포클랜드 제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공교육에도 포함시켜 국민들에게 중요하게 가르친다. 한편 아르헨티나도 경제가 어렵고 [[아르헨티나군]]의 현대화 상황도 힘들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제2차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되지만, 최근들어서 [[중국]]이 아르헨티나와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영국으로서는 예의주시하고 있다. * 전후 아르헨티나 전사자 중 섬에 남겨진 시신 236구를 영국에서 가져가라고 했지만, 아르헨티나 정부는 그들은 이미 '고국'에 있으며, 또 영국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면 포클랜드의 영국 주권을 인정하게 된다는 논리로 전사자 유골의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아르헨티나 전사자 유골은 그대로 포클랜드 다윈 묘지의 아르헨티나 전사자 구역에 묻혀있다.[* 2002년에 [[앤드루 왕자]]가 참배를 했으며 아르헨티나 참전용사와 유가족들이 찾아와서 성묘를 한다.[[https://en.wikipedia.org/wiki/Argentine_Military_Cemetery|관련 위키]]] 2016년에 신원불명의 유골들의 [[DNA 검사]]를 마치는데 합의하고 2017년에 최종보고서를 썼지만 여전히 유골 반환에는 아르헨티나 내부에서 이견이 있다. * 포클랜드 전쟁 당시 2만개의 [[지뢰]]가 깔렸는데 전후에도 처리에 골머리를 앓았다. 2020년에 마지막 지뢰를 해체하고 드디어 지뢰가 완전히 제거됐다고 선포했다. * 포클랜드 전쟁 때 영국 언론의 무분별한 전황 보도가 아르헨티나의 전쟁 수행에 도움이 되자[* [[보불전쟁]] 당시에도 프랑스 언론들이 프랑스군의 작전계획을 전부 떠벌리고 다녀서 프로이센군이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리한 적이 있었다.] 언론에서 자체적으로 통제한 것을 다루는 정훈 교육 자료도 있다. 즉 전시에 국민의 알 권리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지 고민해보자는 내용이다. 당시 [[BBC]]는 언론의 중립을 유지하면서 '아군'이 아닌 '영국군'이라고 불렀으며, 알 권리만을 지나치게 추구하여 군사 작전을 실황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영국군은 종전 후 '''[[군사기밀]] [[누설]]'''을 이유로 BBC에 고소장을 날렸다. * 제2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했던 에이스인 [[피에르 클로스테르망]]은 아르헨티나 조종사들을 교육했다는 이유로 아르헨티나를 지지했다가 영국 국민들에게 배신자라고 욕먹었다. * [[마가렛 대처]]는 영국군 전사자 258명의 가족들에게 일일이 추도편지를 작성하였다. 일과시간은 물론이고 본인의 휴가도 반납해 가며 희생자 각자의 개인사와 전사자의 죽기 전 상황을 상세히 적은 정성들인 편지였다. * 아르헨티나 군부에서는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들이 영국을 돕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는데 이는 완벽하게 빗나갔다. 호주와 캐나다는 영국에 여러 군사적 지원을 제안했으며, 뉴질랜드의 경우 아르헨티나군의 장비 정보를 넘기는 것은 물론 아예 군함을 보내겠다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전쟁 발발 후 인도양에 배치된 영국 해군이 포클랜드 전장으로 출동해 전력 공백이 생기자 이를 호주군과 뉴질랜드군이 메워줬다. 동시에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호주, 뉴질랜드는 아르헨티나와 수교를 끊거나 경제 제재를 가하는 외교적 경제적 압박도 병행했다. 이 때문에 포클랜드 전쟁을 영연방과의 충돌로 해석하기도 한다. * 당시 영국군과 아르헨티나군은 제식 소총이 똑같아서 영국군은 노획한 아르헨티나군의 탄약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군은 벨기에제 [[FN FAL]]으로, 영국군은 FN FAL의 라이센스 버전인 [[FN FAL|L1A1]]으로 무장했고 둘의 차이점은 영국군의 L1A1은 반자동 사격만 가능했다는 것인데, 덕분에 영국군은 아르헨티나 군의 FN FAL을 잔뜩 노획해가서 그동안 목말라했던 완전자동 사격이 가능한 제식 소총에 대한 수요를 어느정도 채웠다. * [[SA80]] 소총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북아일랜드 분쟁에서 영국은 [[FN FAL|L1A1]]을 대체할 새로운 돌격소총을 개발할 필요를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IMF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이미 [[마가렛 대처|대처]] 내각이 예산을 삭감한 데 더해 포클랜드 전쟁까지 치르자 영국 국방부는 말 그대로 주머니가 텅텅 빈 상황에서 SA80을 개발하게 된다. 거기에 없는 돈을 마련한다고 국립 조병창을 민영화하여 상당수가 해체되거나 대량 해고로 대규모 축소될 상황이었다. SA80의 개발회사인 로열 오드넌스(구 엔필드 조병창)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리가 없었다. 결국 개발진들은 SA80의 아버지뻘인 XL64E5를 [[5.56mm NATO]] 탄을 쓸 수 있도록 한 XL70E3을 내놨지만 조악한 재료로 안전성이나 신뢰성이 극악이었다. 다행히 현재는 HK에서 개수한 L85A2로 개조되면서 나아졌다. * 영국 해군이 아르헨티나 공군의 [[A-4]] 공격기를 보포스 포로 격추하면서 컴퓨터로 작동하는 사격통제장치가 있다면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이 검증되었다. 대공포로 사용하던 [[보포스 40mm 포]]가 중소형 전투함에서 여전히 주력으로 운용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후 전함들은 100mm 이상급의 거대주포보다는 대공포나 부포로 쓰이던 40mm, 75mm 급을 주포로 채용하기 시작했으며, 기존의 부포 자리에 어뢰와 대함미사일을 배치하는 양상을 띄게 되었다. 또한 주로 방공함에 장비되던 다양한 미사일 방어 체계들이 함의 체급에 상관없이 기본 사양으로 탑재되기 시작했다. *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간 한국인 교포들이 아르헨티나에서 겪은 일들을 묶어서 펴낸 <아르헨티나 코리안 문학 선집: 소설>에는 포클랜드 전쟁 당시 에피소드가 실려있다.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에서 아르헨티나 전국의 모든 노동조합들한테 거리로 나와서 포클랜드 전쟁을 지지하는 시위를 하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한국인 교포들이 아르헨티나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자 길거리로 나와서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후에라 포클랜드(떠나라 포클랜드), 볼베레 말비나스(오라 말비나스)!"라는 구호를 외치며 전쟁을 일으킨 아르헨티나 군부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이 장면이 아르헨티나 방송국 TV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바람에 주한 영국대사가 한국 외무부 장관을 방문하여 "한국인들이 저렇게 포클랜드 전쟁을 지지하는 시위를 공개적으로 벌이고 있으니, 혹시 한국이 아르헨티나에 무기를 지원해 준 것이 아니냐?"라고 항의를 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또한 실제로 포클랜드 섬에 아르헨티나 군대가 상륙하기 얼마 전, 아르헨티나 무역 회사가 한국에 와서 닭털이 들어간 야전잠바 3천 장을 제작해 갔다고 한다(...). * 과거에는 [[예비군]] [[정신교육]]의 단골 소재였다. 아르헨티나가 무리하게 영국하고 싸우다가 참패해서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직면해 대국민 혼란이 일어난 대신, 승전국인 영국은 지금도 잘 먹고 잘 산다는 이야기. 지금은 시간이 흐르다보니 보다 최신 버전의 다른 사례도 많아져서 잘 쓰이지 않는다. * 탑기어 시즌 21 에피소드 8~9는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무대로 펼쳐졌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의 티에라 델 푸에고의 [[우수아이아]]라는 곳에서 나가라고 강요받았다. 제러미 클락슨이 탄 포르쉐의 번호판('''H982 FKL''')이 포클랜드 전쟁을 기반으로 놀리려고 일부러 만들어진 가짜 번호판이라 우기는데 칠레 국경으로 떠날 때 아르헨티나 우익들이 위협 운전을 한 것은 물론 계란부터 시작해서 돌까지 던져대 차 유리가 깨지는 등 여러 일화가 있었다. *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마라도나]]와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언론 통제로 정확한 사실을 잘 모르다가 스페인에 와서야 패전 소식을 듣고 숙소에서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4년 뒤 1986년 8강에서 잉글랜드와 만나 전설적인 골로 승리하여 패전의 한 속에 있던 아르헨티나의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다. [[디에고 마라도나/국가대표 경력]] 참고. * 2022년 4월 아르헨티나는 전쟁 종결 40주년을 맞이하여 당시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https://www.youtube.com/watch?v=n8e9SexkmHM|#]],[[https://www.youtube.com/watch?v=QF5PX0gZ7dk|#]] 전사자 추모식을 열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Fpl0kjdvHf8|#]] 아르헨티나 대통령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는 영토 보전을 회복하는 것이 절대 우선순위라고 천명했다. * 2022년 6월 한편 영국에서도 [[보리스 존슨]]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전쟁 종결 40주년 추모식이 열렸으며[[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6157323?sid=104|#]],[[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3705382?sid=104|#]], 11월 전쟁 승전 40주년 기념으로 [[앤 공주]]가 섬을 직접 찾아 추모비에 헌화했다. 아르헨티나의 정부는 불쾌감을 표시하며 맹반발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3758787?sid=10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